나의 친구들에게
나는 지금 스탠드를 두 개 켜 놓았어.
남원 할머니가 엄마에게 준,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준 작은 함 위를 비추는 작은 것 하나,
그리고 필요에 의해 책상을 비추려고 산 큰 것 하나.
두 스탠드가 나의 방을 밝혀주는 동안 잠깐 써 내려가면서 이 시간을 기록하려고 해.
나는 연약하고 어리석다.
그래서 친구들이 필요하고 내 어리석은 내면을 보듬고 때로 쓰라리게 긁어줄 누군가를 항상 염원하고 있어.
예기치 못한 신비로운 만남들이 이제껏 나를 지탱해 왔어.
내가 절실할 때에 나의 마음이 허기져서 꺾어진 꽃대처럼 작아졌을 때에 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어.
생각해보니 나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그러지 못했구나.
나는 지치고 말았어.
그래서 많은 것들을 떠내려 보냈어.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잃어버릴 수 있어서 행복했어.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이지.
어린아이처럼 텅 빈 놀이터를 홀로 가득 채우고 싶은 사람이지.
그리고 다른 어린이들에게 놀던 것들을 모두 나눠주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기도 해.
강해지기 위해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서랍 속에 넣었어. 그리고 굳게 잠궜어.
다시는 꺼내지 않고 약해지지 않고 밑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
그러고 나서 얼마간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나는 괴물을 보았어.
흐린 눈에 욕심쟁이 같은 두 볼이 어색하고 미워서 밤새 때려 눕히고 싶었지만, 울기만 했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날부터는 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장점들을 나는 하나 하나 다시 발견해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꺼내 놓고 진심으로 즐거워졌어.
나는 내가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그 향기들에 취해서 가슴이 두근거렸어.
다른 사람이 되려고, (왜 그랬는지 몰라) 잠깐 방황했었던 같네.
그러는 동안 텅 비어버린 마음에 욕심만 지나쳐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말았어.
그런 나를 감내해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물어보고 싶어.
흔한 질문이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야 너에게?' 같은 것.
'너는 무얼 하고 싶어?' 혹은 '무얼 갖고 싶어?' 같은.
'요즘 기분이 어때?' 라든지 '뭐 필요한 것 없을까?' 같은.
그 동안 아주 미안했어. 보살펴 달라고 말했었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네.
나는 괴상한 욕심들로 가득 차서,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농락당하면서 헤매고 있었어.
마음 속에 있는 나를 지켜주느라 주변이 어두운데 불도 밝히지 않고 잠자코 만 있었지.
어둡고 침침한 이 곳을 나는 이제 희고 밝게 비추려고 해.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기분을 물어보고 날씨를 즐기면서.
새로운 문제들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참 오랫동안 잘 걸어 다니지 않았던 거리들을 나는 다시 사랑하게 되었어.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술 취한 아저씨들을 밀어내더라도 다시 가 볼 수 있을 것 같아.
별일이 없으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기억해내고,
내가 사랑했던 노래들과 추억들, 그 곳의 쓸쓸했던 정취들을 다시 좋아하게 되었어.
그리고 너를 이해하게 되었어.
바보 같다고 생각해온 너의 선택들마저 쉽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
다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는 잣대를 들이대고 무엇이든 의미를 끼워 넣으려고 했지.
하나 둘 셋 넷 하루 하루 애쓰는 너를 나는 우습다고 생각했어.
모든 일에는 길이 있다고, 그런 안전한 길로 갈 수 있는 내 자신을 보라고 나는 강요하기만 했어.
(길이 있긴 뭐가 있어), 사는 건 그렇지가 않지.
뒤집어 보아도 똑같고 나아진 것 같아도 제자리고, 다만 살아가는 것인데.
칭찬해주지 못해서 미안.
너는 못난 나를 무척 칭찬해주고 좋아해 주었던 것 같아. 도우려고 했던 것 같아.
나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나를 안아주었던 것 같아. 그래서 만나자고 했던 것 같아.
나는 강하고 날카로운 내 무기에 스스로 감탄하면서도 악몽에 시달렸어.
죽이고 죽이는 꿈들, 공격 당하고 공격하는 꿈들로 아침을 시작해야 했어.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욕심쟁이도 아니고 딱히 이겨낼 일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었는지. (어쩌면 아우성치는 들개들을 설득할 마음이었을까?)
얻은 게 없는 긴 전쟁을 치르고 난 느낌이야.
체력도 동나고 식료품도 떨어지고 내 몸을 덮을 모포 하나 없지.
긴 길을 함께 한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지치고 약해져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어.
멀리서 작은 불빛이 깜빡이는 것이 보이네.
환각을 본 것이라고, 아주 잠깐 내가 일어서기 위해서 깜빡인 것뿐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 불빛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어느덧 눈이 시릴 만큼 크고 밝게 다가온 그 불빛 속에서 나는 여자아이를 만나네.
혼자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구나. 가만히 몸을 늘어뜨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읽고 있어.
옥색 커튼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집을 둘러 보네.
베란다에 다양한 관엽식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여자아이와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아주 작은 남자아이가 우유를 달라고 하길래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고소하고 귀여운 냄새가 가득 코를 자극하네.
여자아이의 책상 위에 마더 테레사 전기가 놓여져 있어.
흰색에 푸른 줄이 그려진 옷을 입은 할머니가 웃고 있구나.
책을 덮고 나는 남자아이에게 따라주고 남은 우유를 컵에 따라 마셨어.
우유의 맛이란 독특한 것 같아.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워서 위로가 되네.

언젠가 말했었지.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그것을 나는 가끔 떠올리곤 했어.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심플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너의 아름다움을.
웃음이 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좋은 일을 하고 싶다니.
나도 좋은 일을 하고 싶어.
그런 내 마음에 동의하는 친구들과 함께.
좋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려고 해.
바뀌는 것은 없지,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어.
그리고 내가 꿈을 꾸는 동안 네가 괴로울 지 어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네 아픔들이 건너온 수많은 도시들의 투명한 길 위에서,
당시의 너와 연결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지금까지 기다려온 것 같구나.
응 만나서 반갑고, 또 만났을 때에는 더 반가울 것 같다.
by valerie | 2009/06/28 23:50 | dialo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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