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눈 앞에서 사물이 제 몸을 헤집으며 마구 나동그래지는 것을 본다.
이건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줘야 할 것이다.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성질이라 할 수 있을까... 하여튼 눈을 깜빡일 때 마다 화면이 죽죽 늘어나는 느낌이다.
엄한 생각, 열광적인 아이디어는 항상 잠들려고 누우면 떠오르곤 한다.
저글링. 꼭 저글링을 막 집중해서 시작할 때의 느낌이 이러할까.
손 끝 발 끝이 똑같이 힘주어 오그라든다. 생각을 짜 내는 데에 한 몫하기 위해서이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생각의 끝에 내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둥그렇고 힘없는 몸이 천천히 무너지는 광경이다.
물리적으로 무너진다기보단 시야가 흐려져서 그렇게 보임과 같다.
노란 공 두 개를 사서 정말 저글링을 시작해볼까를 생각하다 잠에 들었다.
공은 꼭 노란색이어야할까, 파랑색이면 징그러울까도 생각했다.
오큐메트론을 두 방울 눈에 떨어뜨린 다음엔 저글링 말고 다른 생각도 들더라.
세 네살 때 온갖 SF,호러영화 같은 것을 아빠 옆에서 같이 보곤 했는데,
현상에서 시각적인 것만 분리해서 머리 속에 넣어두는 습관이 거기서 생겨났나... 하고.
맥락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80년대 호러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의식하고 대응하는 시공간의 범위가 명확치 않았었다.
방문을 열면 밑이 빠진 텅 빈 공간으로 바뀌고 사물이 녹아내리고 빛이 난반사되서
공포는 다름아닌 티브이가 산 송장처럼 퍼렇고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끄떡하면 파란 광선을 나를 향해 쏘아대는가 하면 벽 속으로 들어가버리곤 했다.
아빠는 주로 벌레와 점액질이 된 사체 같은 것에 열광했다. 나는 광선이 좋았었고...
음.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사람을 본다고 하던데, 난 손으로 알 때가 많다.
손이 눈을 이끈다고 생각하지, 눈을 쫒아 손을 움직인다고는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눈보다는 손, 손의 위치, 감아쥔 모습, 색깔만으로도 꽤나 자극적인데
손이 닿을 때, 잡거나 흔들릴 때에는 더 많은 감정이 일어난다.
쓸쓸한 날에 나는 왕할미 손을 생각한다.
간식을 챙겨드리면 내 손을 덥썩 잡아 힘껏 흔들어주시던 손만 생각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누구든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손을 잡는다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싶을 것이다.
어릴 때 한동안 성당에 다녔었는데, 고백하건데 기도하는 것이 좋았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안는 것이 좋았고 입술이 살짝 닿을만큼 손을 꽉 끌어안을 때마다 두 손이 둥글고 하얗게 느껴졌다.
성체를 모실 때 그 손을 살포시 왼손아래에 붙였다 올리는 것이 행복했고 성수를 찍어 십자가를 그을 때에는
집중하여 매무새에 신경쓰곤 했다.
잠시간 무릎을 꿇을 수 있어 좋았고, 썼던 미사포를 고이 개서 파우치에 넣을 때의 평온함은 더 했다.
몇년 간 손을 잊고 지내다 다시 손을 무척 아끼게 되고부터 가끔 성당에 가고 싶다.
묵주를 손에 감고 흑색 원피스를 입고 홀로 미사를 보고 싶어진다.
생각이 나면 왕할머니가 백살 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고 왔으면 좋겠다.
또 남원에 고라니가 멸종되지 않게 해주세요 같은.
그리고 주억거리며 첫영성체 날 기도문을 외고 과자를 나누어 먹던 친구들의 얼굴도 기억나면 좋겠네.






